장군은 25세때인 1578년(선조 11년)무과에 응시하여 급제하였다. 급제하자 훈련원주부(訓鍊院主簿)를 제수 받아 봉직하였다. 부임해 보니 군기(軍器)는 녹슬고 군기(軍紀)는 해이하여 일조유사시에는 쓸만한 병기와 군인이 없음을 개탄하여 마지 않았다. 이를 본 장군은 이대로 두었다가는 언젠가 큰 일이 나겠다는 생각이 들어 국방의 최고책임자인 병조판서를 찾아뵙고 [소관이 훈련원에 몸담아 보니 국기가 녹슬고 군인의 기강이 해이합니다. 이대로 두었다가는 국가에 변란이라도 생긴다면 속수무책이 될 터이니 대책을 강구하셔야 됩니다.]라고 건의하였으나, 병조판서는 [지금같이 태평성대에 군기를 보수하고 훈련을 강화하라니 올바른 정신으로 하는 소리인가? 만약 훈련원 군사들을 조련하고 병장기를 만들면 백성들을 두려움속에 몰아 넣는 결과가 되리니 망언이로다.] 하면서 젊은 혈기에 분별없는 소리를 한다고 질타하는 것이었다. 장군은 사리에 따져 재차 간곡히 건의하였으나 병조판서는 조금도 굽히지 않고 질책으로 일관하였다.
장군은 올바른 건의가 받아들여지지 않을뿐더러 오히려 수모만 당하자 더 참지 못하고 벌떡 일어서서 군모를 벗어 병조판서가 보는 앞에서 발로 짓밟아 버리고 사직서를 써서 던져 버린 후 훌훌히 일어서서 나왔다. 그 길로 벼슬을 버리고 고향으로 내려와 여러해 동안 불우한 세월을 보냈다. 1583년 이탕개의 난 때 도순찰사 정언신의 막하 장수로 출정하여 공을 세웠다.
그후 다시 벼슬길에 나가 군기(軍器)시 판관이 되었으며 1591년에는 진주판관으로 나가게 되었다. 장군은 부임하여 행정의 공명정대함이 먹줄과 같았고 덕의(德義)를 베풀어 위엄을 세우니 예하 장졸과 관속들은 두려워 하나 백성들은 감복하면서 평화스럽게 지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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