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군이 진주판관에 부임한지 1년후인 1592년(선조25년) 임진년 4월에 임진왜란이 발발했다.진주목사 이경이 병사하자 조유사 김성일의 명에 따라 진주목사 대행에 임명된 장군의 병기를 수리하고 성지를 구축하는 한편 수성군을 모집하여 진주성을 사수하고자 했다.
장군은 모집된 수성군에게 맹훈련을 시켰음은 물론 병기와 자재를 정비하고 양곡을 비치하였는데 염초 510근 제조 및 총통 170여자루를 제작하였다.
진주성은 지리적으로 호남에 이르는 길목에 위치하고 있어 만약 이곳이 무너지면 왜적은 바로 호남지역을 휩쓸게 되는 것이다.
또한 장군은 의병장 김면의 요청에 따라 거창으로 나가 사랑암 부근에서 왜군을 크게 무찔렀다.(이 공로로 1592년 7월 27일 진주목사에 정식으로 임명됨.)9월에는 진해에서 왜군장수 평소태를 생포하여 의주 행재소에 보내 조정의 사기를 높여 주었으며(이로 인해 경상우 병사에 임명), 연이어 고성, 창원까지 진격하여 왜군을 무찌르는 등 큰 공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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